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는 1900년 4월 2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스위스 이론 물리학자였다. 그는 양자 역학의 발전에 주요 기여를 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파울리는 1921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양자화에 관한 것이었다. 아르놀트 조머펠트의 지도하에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를 연구했다. 1922년부터 1923년까지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그는 파울리 배타 원리를 개발했다. 이 원리는 두 개의 동일한 페르미온(전자와 같은 반정수 스핀 입자) )은 동일한 양자 상태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23년부터 1928년까지 파울리는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28년부터 1930년까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그는 미시간 대학교 앤아버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파울리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독일을 떠났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퍼신스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연구 펠로우로 일했다. 1935년부터 1940년까지 그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45년 파울리는 스위스 시민이 되었고 1946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로 돌아와 1958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파울리는 1945년 "새로운 자연 법칙의 발견, 즉 배타 원리 또는 파울리 원리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또한 1931년 로런츠 메달, 1952년 프랭클린 메달, 1953년 영국 왕립 학회 회원, 1956년 마테우치 메달을 수상했다.
파울리는 1958년 12월 15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73세. 그는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파울리의 업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파울리 배타 원리의 개발
2. 파울리 스핀 이론의 개발
3. 중성미자의 예측
4. 핵자기 모멘트의 설명
5. 양자 전기 역학의 발전
6. 파울리 효과의 발견
파울리는 또한 그의 예리한 지성과 날카로운 유머 감각으로 유명했다. 그는 종종 "신의 악마"라고 불리며, 그의 냉소적인 평가는 종종 그의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파울리는 또한 깊은 연민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학생들과 후배들에게 헌신했다.
파울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업적은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영향은 앞으로 수년 동안 계속 느껴질 것이다.